전쟁과 평화 마지막회 리뷰 두번째.
드라마가 시작될 때 과연 원작을 제대로 살릴 수 있을지 우려했던 것에 비하면, 나름 준수했던 결말.
프랑스군의 포로가 된 피에르는 감옥에서 낙천적인 성격의 농부 플라톤 카라타예프를 만나게 된다.
가정이 있는 형제 대신 징집되어 10년간 군대에 있었지만 한번도 사람을 죽인적이 없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항상 긍정적인 면만을 바라보며, 살아있으면 그 안에서 행복을 찾을수 있다는 카라타예프의 단순명료한 철학은 피에르의 인생에 대한 시각을 바꾸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한 달 간 모스크바에 짱박혀서 러시아의 협상 제의만 기다리던 나폴레옹은 드디어 퇴각 결정을 내린다.
그 이후 남쪽으로 내려가려다 쿠투조프의 러시아군에게 쫓겨서 다시 스몰렌스크 가도로 퇴각하며 지옥 행군 시작.
프랑스군은 포로들이 러시아군에 합류하는걸 막기위해, 피에르와 카라타예프를 포함한 러시아인 포로들을 같이 끌고간다.
그리고 혹독한 행군의 와중에 기력이 다해서 낙오된 카라타예프는 프랑스군에게 총살당한다.
이 사람은 죽음도 참 초연하게 맞이하던데, 어찌보면 가장 러시아적인 인물이 카라타예프인듯.
조국 전쟁에서 프랑스군의 퇴각은 텍스트로만 봐도 비참하기 이를데 없다.
45만 정도였던 원정 병력 중에 살아서 러시아를 빠져나간 인원은 5만이 채 안될 정도였으니.
어떠한 상념이나 번민도 끼어들 여지가 없는 극한 상황에서 원초적 생존 본능만으로 자신을 지탱하는 피에르. 카라타예프의 가르침 외에도, 이런 혹독한 경험이 피에르의 내적 변화에 영향을 준게 아닐까.
불륜남의 아이를 가진 엘렌은 피에르와의 결혼을 무효로 하고 불륜남과 결혼하고 싶어하지만, 결혼 무효를 입증해줄 피에르는 감감 무소식이고, 사생아를 임신했다는 이유로 귀족 사회에서 배척당한다.
사교계의 여왕 자리에 집착하는 엘렌은, 아이만 없어지면 모든게 해결된다는 생각에 유산을 유도하는 약을 과다복용했다가 고통 속에서 죽음을 맞는다.
데니소프와 돌로호프가 이끄는 부대는 프랑스군이 국경을 넘어 러시아에서 완전히 빠져나갈 때까지 추격하고 감시하는 임무를 수행중이다.
데니소프에게 편지를 전달하러 온 연락병은 바로 페챠 로스토프였다.
페챠는 데니소프의 부대에 합류해서 프랑스군 추적 임무에 참여하겠다고 자원한다.
심각한 와중에 뭔가 코믹했던 데니소프와 돌로호프의 대화.
하여간 돌로호프 이 인간 진짜 특이한 캐릭터다. ㅋㅋ
전쟁과 평화 보다가 톰 버크한테 낚여서 결국 BBC 삼총사까지 다 봤음.
하지만 바로 그날 밤 페챠를 데리고 미친짓 하러간 돌로호프.
아군인척 하면서 프랑스군 야영지에 잠입해서 적군 인원과 포로 상황을 확인함.
그리고 데니소프의 부대는 다음날 아침 프랑스군 야영지를 공격하는데....
프랑스군과의 교전 중에 페챠는 머리에 총을 맞고 즉사한다.
그리고 그들이 구해낸 러시아인 포로 중에는 피에르가 포함되어 있었으니....
임사 체험이 안드레이에게 가장 순수한 정신상태를 경험하게 했다면, 피에르에게는 그 순간이 바로 이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 순간의 피에르에게는 드디어 살아났다는 안도감과 환희, 자기를 구출해준 친구와 동포에 대한 감사의 마음외에는 그 어떤 번뇌도 끼어들 여지가 없었을듯 하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한 원작의 묘사는 매우 간단하다.
"구출된 포로 중에는 피에르 베주호프도 있었다."
막내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듣고 오열하는 로스토프 백작부인과 가족들.
남의 본진 털러 왔다가 자기 본진에 쿠데타 음모가 있다는 소식에, 먼저 프랑스로 날아가는 나폴레옹.
초거대 병력을 동원했던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은, 한 줌만 남은 패잔병들이 러시아 국경을 넘으면서 비참하게 끝난다.
황제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프랑스군을 추격해서 완전히 러시아에서 몰아내는데 성공한 쿠투조프 장군.
이 공로로 스몰렌스크 공의 칭호와 훈장을 받게되지만, 나폴레옹을 완전히 격퇴시키기 위해 유럽 원정을 떠나야 한다는 황제의 주장에 대해, 쿠투조프는 조국 방어에 성공했으니 더 이상의 전쟁은 무리라고 주장하면서 다시 황제와 멀어지게 된다.
조국 전쟁이 끝나고 얼마 후, 쿠투조프는 세상을 떠난다.
조국 전쟁이 끝난 다음 해인 1813년.
성도 모스크바의 몰락과 막내 아들의 죽음에 상심하던 로스토프 백작이 세상을 떠난다.
몇 달 간의 포로 생활에서 벗어나 예전의 생활로 돌아간 피에르에게 갑자기 찾아온 자유는 낯설지만, 차츰 그 생활에 익숙해지는 동시에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된다.
카라타예프가 피에르에게 끼친 영향력을 짧지만 효과적으로 보여준 장면.
허기진 피에르는 음식이 앞에 놓이자 예전처럼 허겁지겁 먹으려고 하다가 갑자기 멈춰서 뭔가를 생각하더니, 나이프로 감자를 작게 썰어서 카라타예프가 가르쳐준대로 소금을 뿌리고 잠시 바라보다가 입에 넣은뒤 천천히 씹으면서 맛을 음미한다.
삶 속에서 작은 행복을 찾으라는 카라타예프의 말을 실천하며 드디어 삶의 진리를 깨달은 피에르.
모스크바로 돌아온 마리아는 몰락한 로스토프 가족의 새로운 거처를 방문하지만
예전과 달리 니콜라이의 태도는 차갑고 냉랭하기 짝이 없어서 마리아를 실망시킨다.
마리아는 로스토프가 사람들에게 모스크바의 자기 저택에 와서 같이 살자는 제안을 하는데
니콜라이는 자존심때문에 마리아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고, 이 문제로 가족들과 언쟁을 한다.
어머니가 시키는대로 예의상 마리아에게 답례 인사를 하러온 니콜라이는 여전히 쌀쌀맞다.
아직도 마리아를 좋아하긴 하지만, 몰락한 집안을 떠맡은 자신과 엄청난 재산을 상속받은 마리아는 동등한 입장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돈때문에 상속녀에게 접근한다는 말을 듣기 싫어서 일부러 마리아를 멀리하는 니콜라이.
로스토프 가문이 그동안 생활 유지를 위해 상당한 빚을 지고 있었다는게 백작의 사후에 밝혀졌는데, 니콜라이는 고인이 된 아버지가 비난받지 않도록 그 빚을 전부 상속받고, 남은 가족을 부양하고 빚을 갚기위해 군대에서 제대하고 공무원이 된다.
드라마와 달리 원작에서는 로스토프 백작부인이 집안의 몰락을 실감하지 못해서, 니콜라이가 어머니에게 가난을 숨기기 위해 엄청나게 고생함.
하지만 니콜라이는 돈 때문에 결혼하는걸 극도로 혐오해서, 상속녀나 돈많은 미망인과 결혼하라는 주변의 권유를 전부 거절한다.
원작에서 마리아는 이 모든 상황을 주변의 소문과 짐작으로 파악하고 니콜라이는 자존심때문에 자기가 힘들다는 얘기를 한 마디도 안하는데, 드라마는 이해를 돕기 위해서인지 니콜라이가 처한 상황을 정말 직설적으로 전부 대사 처리해놨음...
니콜라이의 마음을 돌리려고 설득하던 마리아는 감정에 떠밀려 결국 본심을 털어놓는다.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당신을 기다렸는지 알아요?"
이래도 안 넘어가면 사람이 아님.
마리아와 니콜라이가 결혼을 결심하게 되는 장면은 원작과는 좀 달랐지만, 이쪽이 더 괜찮았다.
전쟁과 평화의 다른 커플들에게는 '인생은 실전'을 보여주기라도 하려는듯 시련을 안겨주는 톨스토이가 유독 이 커플은 처음부터 끝까지 달달하게 그려놓은게 참 특이하다.
에필로그에서 이들의 결혼 생활과 마리아의 자녀 교육까지 꽤나 디테일하게 써놓은걸 보면, 자기 부모를 모델로 해서 만든 커플에 대한 톨스토이의 애정을 엿볼수 있다.
자식을 모두 잃고 낙담한 쿠라긴 공작은 피에르에게 그동안의 잘못에 대한 용서를 빌지만, 모든 번뇌와 혼란에서 벗어나 세상을 좀더 관대한 눈으로 보게된 피에르는, 용서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답변한다.
어찌보면 안드레이와 피에르는 각자 다른 과정을 거쳐서 같은 깨달음을 얻은 셈인데, 그 깨달음을 자신과 일체화 하는 과정에서 안드레이는 영적인 세계를 선택했고, 피에르는 인간 세상을 선택한것 같다.
마리아의 약혼 소식을 듣고 축하해주러 달려온 피에르는 마리아와 함께 있던 나타샤를 알아보지 못한다.
피에르가 나타샤를 알아보지 못한 이유는 나타샤가 외적으로 너무 많이 변했기 때문이다.
안드레이의 죽음 이후 나타샤는 상실감과 슬픔때문에 병을 얻게되고, 육체적으로 쇠약해지고 삶의 희망도 잃으면서 나타샤 특유의 영혼의 불꽃이 꺼진 상태가 된다.
(드라마에서는 배우가 변한게 하나도 없으니, 촛불 뒤에 앉혀놓고 잘 안보이게 해놓음)
피에르는 마리아와 나타샤에게 플라톤 카라타예프에 대한 얘기를 해준다.
(로스토프 가족들이 전부 마리아의 집에서 살게됐는데 왜 나타샤밖에 없는가....원작의 순서는 뒤바꿨는데 내용은 그대로 따라가려고 하다보니 생긴 소소한 오류다)
피에르의 얘기를 들으면서 점점 생기를 되찾는 나타샤.
예민한 감수성과 직관을 가진 두 여자는 피에르가 예전과는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는걸 감지하고, 달라진 피에르를 계속 만나면서 나타샤도 점점 예전의 생기와 삶의 의욕을 되찾는다.
(그러나 드라마는 시간 관계상 딱 한번 만나서 번갯불에 콩을 볶는걸로 해결)
나타샤를 만나고 돌아가서 밤을 꼬박 새운 피에르는 날이 밝자마자 달려와서, 나타샤와 결혼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고 마리아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리고 대략 그렇게 됨.
원래 원작 소설의 진행 순서는,
피에르의 구출->병 치료를 위해 나타샤가 마리아와 모스크바행->피에르가 마리아의 집에서 나타샤를 만남->얼마 후 결혼->로스토프 백작 사망->프랑스 원정 중이던 니콜라이 제대->공무원이 된 니콜라이가 가족을 부양하느라고 한동안 X고생->마리아와 니콜라이 재회->마리아와 니콜라이 결혼->니콜라이의 모친과 소냐가 니콜라이와 마리아를 따라서 볼콘스키 가문의 영지(Bald Hills)로 이주.
여기서 순서상 제일 먼저인 나타샤와 피에르의 결혼을 주인공 우대 차원에서 뒤로 빼다보니 중간에 약간 어색한 부분이 생기는데, 사소한건 그냥 얼버무리고 넘어가는걸로..
그리고 7년 후.
볼콘스키가의 영지 Bald Hills에 모인 니콜라이의 가족과 피에르의 가족.
이제 다 자란 안드레이의 아들 니콜라이는 피에르에게 많은 영향을 받는다.
피에르와 나타샤는 자기들의 로망대로 자식을 여럿 낳으면서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소설에서는 페테르스부르크에 다녀온 피에르가 12월 혁명당으로 추정되는 조직에 가담하고 돌아와서, 황제를 중심으로 한 귀족 사회의 부패를 비판하고 개혁을 주장하다가 황제 충성파인 니콜라이와 한바탕 언쟁을 한다.
하지만 드라마가 다 끝나가는 마당에 그런 불화를 끼얹을 수는 없으니 다 스킵하고 훈훈하게 마무리.
니콜라이는 본격적으로 농사에 뛰어들어 아내의 도움없이 4년만에 아버지가 남긴 빚을 전부 갚고, 몇 년 후에는 영지를 늘리고 매각했던 로스토프가의 별장을 다시 사들일 정도로 집안을 일으키는데 성공한다.
마리아는 현모양처의 전형으로, 오랜 군대 생활로 다혈질적인 남편의 성격을 바꾸는데 영향을 주기도 하고, 자녀 교육에도 자기만의 철학을 가지고 접근하는 현명함을 보여주는데, 덕분에 니콜라이는 아내한테 사족을 못쓰는 애처가가 된다.
"사람들은 고통을 불행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포로생활 이전의 나로 돌아갈것인지, 아니면 그 모든 일을 다시 겪을것인지 선택하라고 한다면, 난 주저없이 후자를 택할 것이다."
피에르의 나레이션이 흐르며 드라마는 햇살이 밝고 따뜻한 정원에서 온 가족이 모여 피크닉을 하는걸로 마무리된다.
[2016-02-19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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