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촬영의 효과를 극대화한 기막힌 영상미를 선보인 전쟁과 평화 3회.
원작의 핵심인 등장인물들의 사상과 철학, 그리고 각 전투에 대한 역사적 배경에 대한 설명이 많이 부실해서 보기에 좀 답답하지만, 러시아 현지와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에서 촬영했다는 풍광의 근사함만은 지금까지 제작된 동명 영화나 드라마에 비교해서 최고라 할 수 있겠다.
(거기다 HD 고화질...)
3회는 피에르와 돌로호프의 결투 장면으로 시작된다.
인상깊었던 도입부.
망부석 상태의 피에르때문에 정지 화면인가 했는데, 눈발이 날리고 뒤에 마차도 지나간다.
카메라가 서서히 줌인을 하면서 피에르에게 촛점이 맞춰지는데, 표정을 알아볼수 있는 거리에 접근할 때까지도 폴 다노는 완벽한 정지 상태를 유지하고, 이런 황당한 상황에 내몰린 피에르의 멘붕 심리를 절묘하게 표현했다.
(하지만 배우들은 추위때문에 엄청 고생했을듯....제작 후기가 궁금하다.)
전쟁과 평화에서 피에르는 톨스토이의 페르소나격인 인물이라, 드라마에서도 보는 사람들이 피에르의 심리 상태에 감정이입을 하도록 유도한다는 느낌이 든다.
베테랑 군인 돌로호프와, 결투 직전에 총쏘는 법을 배운 피에르의 대결은 의외로 피에르의 승리로 끝나지만, 모든 것이 환멸스러운 피에르는 엘렌과의 별거를 선택한다.
공허한 마음을 채워줄 것을 찾아서 비밀 결사 프리메이슨에 가입하기도 하고
자기 영지를 돌아보고 농민들의 생활 향상에 애쓰기도 하면서, 개인적인 불행을 잊으려고 노력하는 피에르.
한편, 결투의 입회인이었던 니콜라이는 부상당한 돌로호프가 치료를 받게 해주고, 자비를 털어서 돌로호프의 가족을 부양하기도 하고, 머물곳이 없는 돌로호프를 자기 집에서 지내게 해준다.
(하여간 로스토프 집안 사람들은 호인을 넘어서 자발적인 호구가 되주는게 문제....)
하지만 니콜라이가 베푼 그 모든 호의에도 불구하고, 돌로호프는 머리 검은 짐승을 왜 거두면 안되는지를 행동으로 보여준다.
로스토프가에 머물면서 소냐의 순수함에 반한 돌로호프는 소냐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하고, 그 이유가 니콜라이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니콜라이에게 앙심을 품는다.
(배우 자체는 꽤 매력있길래 찾아봤더니 돌로호프 역 톰 버크는 BBC 삼총사에서 아토스로 나옴)
오랜만에 도박 테이블에서 마주치게 된 두 사람.
돌로호프는 니콜라이의 자존심을 건드려서 도박판에 뛰어들게 만들고, 니콜라이는 계속 돈을 잃으면서도 오기때문에 중간에 그만두지 못한다.
처음엔 자존심으로 시작했다가 그 다음엔 질수없다는 오기로, 나중엔 본전은 건지려는 생각에서 판돈은 점점 커지고, 밤을 꼬박 새운 도박판에서 결국 니콜라이는 한 재산을 날린다.
경제 개념이 희박한 호인 로스토프 백작이 주변인들에게 인심쓰면서 살아온 결과, 이 무렵 경제적으로 쪼들리기 시작한 로스토프 집안은 니콜라이의 도박빚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가세가 기울기 시작하고, 결국 로스토프가는 도시에서의 생활을 유지할 여력이 없어서 시골로 이주하게 된다.
그 다음 뜬금없는 러시아군 출병 장면이 나오는데....어떻게 여기서 배경 설명 하나가 없나.
앞부분에서 1806년 가을이라고 했으니, 이건 아마 라인동맹때문에 빡친 프로이센과 러시아, 영국 등이 제 4차 대 프랑스 동맹을 맺은 다음, 프랑스하고 한 판 붙은 프로이센이 왕창 깨지고 수도 베를린까지 함락당하는걸 본 러시아가, 뒤늦게 프로이센을 지원하려고 군대를 출동시키는 장면인것 같다.
전쟁 장면 하나 안보여주더니만 바로 다음에 뭔 느닷없이 평화조약 체결....
러시아-프랑스 맞대결은 아일라우에서 쌍방이 개피보고 무승부, 프리틀란트에서 러시아가 박살난뒤 결국 러시아는 전의를 상실하고, 1807년에 틸지트에서 프랑스와 평화 조약을 맺는데, 이 장면에서 나오는게 바로 틸지트 조약 이야기다.
이 조약으로 나폴레옹은 유럽 대륙 국가들과 영국의 무역을 전면 중단시키는 대륙 봉쇄령에 러시아까지 합류시키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몇 년 후 러시아가 도저히 못참겠다고 영국과 무역을 재개하는데, 이것이 바로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일명 조국 전쟁의 빌미가 된다.
그리고 1809년 봄.
아내를 잃은 뒤, 죄책감과 후회에 사로잡혀 반쯤 삶의 의욕을 상실한 안드레이에게 피에르가 찾아온다.
피에르는 안드레이가 다시 활기를 찾을 수 있도록 이런저런 권유를 하지만, 인생을 포기하다시피한 안드레이에게는 어떤 이야기도 통하지 않는다.
장엄하고 광활하고 멋있었던 풍경.
자기도 불행하지만, 의욕을 상실한 친구가 다시 행복을 찾길 바라는 피에르는 계속 안드레이를 설득한다.
다른 귀족 사회 구성원들과는 달리, 안드레이와 피에르는 대상의 본질을 이해하는 능력이 있는데, 그래서 잘 어울릴것 같지 않은 이 두 사람이 절친이 된것 같다.
평화시의 군대에 대한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로스토프가의 시골 영지로 가는 길에 우연히 나타샤를 보게되는 안드레이.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인 나타샤는 안드레이에게 반하고, 안드레이는 사소한 것에서 행복을 찾는 나타샤의 성격과 생기발랄함에 끌리게 된다. (원작에서는 두 사람 나이 차이가 띠동갑 이상)
백작의 권유로 로스토프가에서 하룻밤 머물게 된 안드레이는 우연히 엿듣게된 나타샤와 소냐의 대화에서 나타샤가 자신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걸 알게 되고, 소녀들의 재잘거림을 들으며 젊음의 생명력과 생동감에 감화된다.
원작에서도 안드레이가 변화하는 소소한 계기가 되는 장면인데, 드라마는 백야를 배경으로 아주 그림같이 뽑아놔서 좋았다. 이번 전쟁과 평화는 인간 관계, 특히 남녀 관계의 디테일은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는것 같다.
안드레이 내면의 변화는 나무를 바라보는 장면으로 설명이 되는데
자신을 죽은 나무와 동일시하던 초봄의 안드레이.
나무에 잎사귀 하나 없고, 배경도 어두컴컴 우중충하다.
로스토프가를 방문하고 돌아와서 생명력을 되찾은 나무를 바라보는 안드레이.
신록이 만발한 나무를 보며, 안드레이도 다시 삶의 의욕을 되찾는다.
1809년 겨울 상트 페테르스부르크.
황제가 개최한 무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속속 도착하는 마차들. (현지 촬영의 위엄....)
사교계 데뷔 첫 무도회인데, 아무도 춤 신청을 하지 않아 초조한 나타샤.
안드레이는 피에르의 부탁을 받고 나타샤에게 춤 신청을 하고
나타샤는 안드레이와 사교계 데뷔 첫번째 춤을 추게 된다.
무도회 장면은 그냥 예술이었다.
(이걸 찍으려고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을것이며, 완성될 때까지 몇번이나 같은 장면을 반복했을지 생각을 안할수가 없었던게 함정.)
남녀 사이에 애정이 싹트는걸 춤으로 표현하는 방법은 프레드 아스테어 시절이나 21세기나 별 차이가 없는것 같다.
춤이 진행되면서 두 사람의 감정이 변화하는 것과, 무도회 장면 중간중간 데이트(?) 장면을 넣어서 둘 사이가 점점 가까와지는걸 표현한 연출은 짧으면서도 임팩트있고 깔끔했다.
제일 친한 친구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가 사랑에 빠지는걸 지켜보면서,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서글픈 피에르.
나타샤와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하는 안드레이에게 피에르는 당장 나타샤에게 청혼하라고 격려한다.
(안드레이는 인간 고목 코스프레할때는 언제고...하지만 다음회에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겠지.ㅠ)
친구에게 행복을 쟁취하라고 등 떠밀어 보낸 뒤에, 나타샤를 좋아하지만 껍데기뿐인 결혼 생활의 굴레에 묶인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되새기면서 슬픔에 빠진 피에르.
3편은 장면도 화려하고 좋았으나 이제 좋은 시절은 다 갔고, 4편에는 예정된 발암 스토리가 펼쳐진다.
[2016-01-20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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